VC 심사역이 되려면 무슨 자격증을 따야 하는지부터 찾아보는 분이 많은데, 따로 따야 하는 자격증은 없습니다. 출신도 제각각입니다. 저는 회계사로 일하다 VC에 3년 있었고, 그때 보고 겪은 것을 지망생 입장에서 궁금할 만한 순서로 적어 보겠습니다. 한 사람의 경험이라 회사마다 다를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하고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심사역을 하고 있나
제가 있던 곳은 회계사가 많지 않았습니다. 약사, 엔지니어, 변리사 같은 이공계 출신이 대부분이었고, 문과 쪽은 증권사에서 기업공개(IPO) 업무를 하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투자 대상이 기술 회사이다 보니 기술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을 많이 찾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회계사 경력이 불리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재무제표를 읽고 매출을 추정하는 일은 회계사 일을 해 봤다면 금방 손에 익습니다. 어려웠던 건 다른 쪽이었습니다. VC가 보는 회사는 매출이 아주 작거나 재무제표에 볼 게 거의 없는 기술 회사가 많습니다. 이 회사가 몇 년 뒤 어떻게 커 있을지가 잘 상상이 안 되니 자꾸 보수적으로만 보게 됐습니다. 이건 업계에 있으면서 기술 공부를 계속하다 보니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가고 싶은 회사 공고는 내가 원할 때 안 뜹니다
저는 한국공인회계사회 구인공고에서 VC 채용 공고를 봤고, 마침 건너 아는 분이 그 회사에 있어서 이력서를 조금 수월하게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헤드헌터를 통해 오는 자리도 있습니다.
해 보고 느낀 건 이직은 여러 가지가 한꺼번에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고 싶은 회사의 원하는 자리가 딱 내가 옮기고 싶은 때에 열리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보통은 이직을 고민할 즈음 뜬 공고를 보고, 그 회사가 어떤 곳인지 알아본 다음 괜찮으면 지원하게 됩니다.
그래서 너무 이상한 회사만 아니라면 일단 VC 업계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 들어가면 그다음 이직은 업계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 내 이력 덕분에 훨씬 쉬워집니다. 관심이 있다면 평소에 업계 소식을 챙겨 보고 준비하고 있다가, 공고가 떴을 때 바로 지원하는 게 좋습니다.
면접에서는 종목 세 개를 설명해 보라고 했습니다
따로 과제는 없었고 스톡피칭을 했습니다. 종목 세 개를 골라 각각 왜 투자할 만한지를 말하는 방식입니다. 투자 논리를 정리해서 말할 수 있는지를 보려던 것 같습니다. 입사하고 보니 투자할지 말지를 정하는 투자심의위원회(투심위)에서 직접 발표할 일이 많았는데, 그래서 주니어를 뽑을 때부터 이 능력을 보는구나 싶었습니다.
준비한다면 종목마다 투자 이유 두세 가지와 그걸 뒷받침하는 숫자, 그리고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는 지점 하나를 같이 정리해 두기를 권합니다. 좋은 얘기만 늘어놓는 것보다 위험까지 말할 수 있어야 질문이 들어왔을 때 답하기 편합니다.
들어가면 처음에 하는 일
주니어 때는 리서치와 투자심사보고서 작성이 대부분입니다. 투자한 뒤에는 그 회사 주주총회에 가고, 해당하면 이사회에도 참석하고, 회사 안에서 기안 올리는 일이 많습니다. 혼자 투자한 건은 사후관리도 혼자 하고, 선배와 같이 한 건은 중요한 결정만 같이 내리고 나머지 행정은 주니어가 맡는다고 보면 됩니다.
가장 어려운 건 투자할 회사를 찾아오는 일(딜 소싱)입니다. 아는 사람도 없고 내 투자 이력도 없으니 회사 쪽에서 저를 먼저 찾을 이유가 없습니다. 먼저 메일을 보내도 저를 설명할 게 없으니 기회가 잘 오지 않습니다. 이때는 할 수 있는 걸 다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스타트업이 투자자 앞에서 사업을 소개하는 데모데이, 업계 행사, 증권사가 여는 기업설명회(IR)에 나갑니다. 낮에는 리서치와 보고서 수준을 올리는 데 힘을 쏟고, 저녁에 업계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도 가능한 한 나갑니다. 당장은 티가 안 나도 몇 년 쌓이면 자연스럽게 소개가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주변에 잘나가는 또래 심사역이 보여도 비교하면서 기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처음엔 누구나 비슷하고, 업계에 들어온 것만으로 출발은 한 것입니다.
딜은 결국 사람을 통해 들어옵니다
딜이 들어오는 길은 회사마다 다릅니다. 큰 회사는 지인을 통해 먼저 제안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고, 선배와 주니어가 같이 투자하는 곳에서는 주니어가 선배가 가져온 건에 참여하면서 보고서 작성부터 사후관리까지 같이 합니다. 작은 회사나 프로젝트펀드(투자할 회사를 먼저 정하고 그 건에 맞춰 돈을 모으는 펀드)를 만들어야 하는 회사라면 주니어도 더 적극적으로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저는 또래 심사역 모임에서 시작했습니다. 같이 투자하자는 제안을 주고받을 만큼 친해지고, 투자 경험이 쌓이면서 회사 대표들과도 알게 되면 그 뒤로는 자연스럽게 넓어집니다. 증권사 IPO 담당자도 자주 보는 게 좋습니다. 요즘 상장 분위기와 상장 전 투자 기회를 들을 수 있습니다. 증권사 자체 자금을 투자하는 PI 담당자와도 친해 두면 좋은데, 증권사가 프로젝트펀드에 출자자로 들어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데모데이도 많이 가 봤는데, 생각보다 이미 업계에서 유명한 회사나 VC들이 투자하고 싶어 하는 회사는 잘 없었습니다. 물론 그 안에도 옥석은 있겠지만, 직접 발굴한 회사가 옥석일 확률은 생각보다 낮기도 하고 제 경험도 다소 짧았던 터라 저는 성공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나가야 하는 시기가 있고, 나와 회사의 투자 이력이 쌓이면 지인을 통한 공동투자 제안이 늘어납니다. 좋은 투자가 그렇게 오는 경우가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지원 전에 해 두면 좋은 세 가지
- 기술 공부: 어느 분야를 맡느냐에 따라 깊이 볼 기술은 달라지지만, 주요 분야 흐름은 넓게 알아 두면 좋습니다
- 왜 하고 싶은지 정리하기: 제가 겪기로는 성과급이 크게 나올 가능성은 생각보다 많이 낮고, 기본급도 아주 높은 편은 아닙니다. 돈 말고 이 일을 하고 싶은 이유가 있어야 오래 합니다
- 회계 기초: 회계를 전혀 모른다면 회계원리 정도는 보고 오는 걸 권합니다
다음 편부터는 캡테이블(주주별 주식 수와 지분율을 정리한 표) 계산처럼, 들어가서 바로 쓰게 되는 실무를 하나씩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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