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회계사의 실무노트

연차수당, 퇴직금, 4대보험부터 M&A와 기업금융까지: 판례와 법령 근거로 정리합니다.

급여·노무/해고·각서

각서와 위약금 약정의 효력

All day Biz 2026. 9. 7. 11:28

근로 관련 문서 중에 각서만큼 신뢰가 과대평가된 것도 드뭅니다. 서명을 받았으니 합의가 성립했고, 합의했으니 구속력이 있다는 추론인데요. 강행규정 앞에서는 이 추론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럼 각서가 전부 무효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효력이 남는 부분과 없어지는 부분이 나뉘는데, 그 기준이 어디인지를 조문과 판례로 살펴보겠습니다.

근로자가 동의했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사용자는 근로계약 불이행에 대한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액을 예정하는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다.
(근로기준법 제20조)

그런데 이 한 문장짜리 조문이 실무 문서를 가장 많이 무효로 만듭니다. 읽어 보시면 주체는 사용자이고 금지 대상은 계약을 체결하는 행위 자체입니다. 근로자가 동의했는지는 요건에 들어 있지 않죠. 강행규정이라 당사자 의사로 배제할 수 없고, 위반한 조항은 처음부터 효력이 없습니다. 서명을 몇 장 받아 두었느냐와 무관합니다.

그럼 손해배상은 전혀 받을 수 없나요

여기서 한 번 더 오해가 갈립니다. 조문이 금지하는 것은 배상 자체가 아니라 액수를 미리 정하는 방식입니다. 손해가 실제로 얼마인지 따지지 않고 금액을 미리 확정해 두면, 근로자는 퇴직을 결심하는 순간 그 금액을 부담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근로관계를 벗어나는 선택이 금전으로 봉쇄되죠.

금지된 것은 손해배상 청구가 아니라, 손해액을 미리 확정해 두는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손해가 났다면 민법의 일반 원칙에 따라 손해의 발생과 액수를 입증해서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럼 회사는 왜 각서를 받으려 할까요? 입증 부담이 회사 쪽에 있는 게 부담스러워 각서로 대신하려는 건데, 제20조가 바로 그 시도를 막아 둔 조문입니다.

어떤 문구가 무효가 되나요

물론 각서가 다 무효인 건 아닙니다. 다만 실무에서 반복해 나오는 무효 유형이 넷 있습니다.

  • 중도 퇴사 시 위약금 ○○만원: 위약금 예정
  • 손해 발생 시 ○○만원 배상: 손해배상액 예정
  • 1년 미만 퇴사 시 지급 급여 반환: 임금 반환을 통한 근로 강제
  • 퇴직금·연차수당 포기 각서: 강행규정상 권리의 사전 포기

사실 마지막 유형은 제20조가 아니라 각 권리의 근거 규정에서 무효가 됩니다. 퇴직금청구권은 퇴직할 때 생기니까 재직 중에는 미리 포기할 대상 자체가 없고, 연차수당도 마찬가지죠. 근거 조문은 다른데 결론은 같습니다.

서명은 어느 유형에서도 요건이 아닙니다.

교육비 반환 약정도 무효인가요

그럼 회사가 비용을 들여 교육을 보냈는데 수료하자마자 퇴사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건 다릅니다.

기업체에서 비용을 부담 지출하여 직원에 대하여 위탁교육을 시키고 이를 이수한 직원이 교육 수료일자로부터 일정한 의무재직기간 이상 근무하지 아니할 때에는 기업체가 우선 부담한 해당 교육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상환하도록 하되 의무재직기간 동안 근무하는 경우에는 이를 면제하기로 하는 약정은 (…) 금지된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의 약정이 아니므로 유효하다.
(대법원 1996. 12. 20. 선고 95다52222, 52239 판결)

사실 논리는 단순합니다. 교육비는 원래 근로자가 부담했어야 할 비용이고, 회사는 그걸 먼저 내주었을 뿐입니다. 근무로 갚거나 금전으로 갚거나 선택지를 준 구조라 위약금이 아니라 선급 비용의 정산이라는 거죠. 물론 액수와 기간이 지나치게 과중하면 그건 따로 다퉈질 여지가 있습니다. 이 판결이 대법원 1992. 2. 25. 선고 91다26232 판결 등을 참조판례로 든 걸 보면 법리가 상당히 오래 축적된 것이기도 하고요.

교육비라고 하면 다 되나요

사실 이 판결의 의미는 반대편 결론에 있습니다. 회사 사규가 국내 장기연수자에게 정상급여와 상여금을 지급하도록 정해 두었는데, 의무복무기간을 못 채우면 그 급여까지 반환하라는 약정이 함께 있었거든요.

기업체는 국내 장기연수기간 중에 있는 근로자에게 (…) 정상급여 및 상여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는 것으로서 (…) 원래 근로자가 부담하여야 할 비용을 기업체가 우선 부담함으로써 근로자에 대하여 반환청구권을 가지게 된다고 할 수 없으므로, (…) 반환하여야 한다는 약정은 (…)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의 예정으로서 무효이다.
(위 95다52222 판결)

반환 대상 효력 이유
학비·교재비 등 대납 실비 유효 근로자가 부담할 비용을 회사가 선급
연수 중 정상급여·상여금 무효 회사가 원래 지급 의무를 부담

회사가 원래 지급해야 했던 급여였기 때문입니다. 대납한 비용이 아니라 원래 지급할 금액이니 돌려받을 근거가 서지 않죠. 판결은 나아가 이미 반환받은 급여도 부당이득으로 되돌려 주라고 했습니다. 근로자가 반환 의무가 없다는 걸 알면서 자유로운 의사로 준 게 아니라면 민법 제742조의 비채변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입니다. 저는 교육비 약정을 볼 때 항목별로 "이 비용은 원래 누가 부담했어야 하는가"부터 묻습니다. 이 질문 하나로 대부분 갈리거든요.

사이닝보너스 반환은요

그럼 사이닝보너스는 어떨까요. 경력직에게 주는 일회성 인센티브는 제20조가 아니라 계약 해석의 문제로 다뤄집니다. 참조조문부터 근로기준법이 아니라 민법 제105조와 제655조고요.

이른바 사이닝보너스가 이직에 따른 보상이나 근로계약 등의 체결에 대한 대가로서의 성격만 가지는지, 더 나아가 의무근무기간 동안의 이직금지 내지 전속근무 약속에 대한 대가 및 임금 선급으로서의 성격도 함께 가지는지는 해당 계약이 체결된 동기 및 경위, 당사자가 계약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계약서에 특정 기간 동안의 전속근무를 조건으로 (…) 지급한다거나 기간의 중간에 퇴직하거나 이직할 경우 이를 반환한다는 등의 문언이 기재되어 있는지 및 거래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15. 6. 11. 선고 2012다55518 판결)

저는 이 기준에서 계약서 문언의 비중이 가장 크다고 봅니다. 앞쪽 성격에 그친다면 근로계약이 실제로 체결된 이상 반대급부는 이미 이행된 것이어서 반환 대상이 되지 않으니까요. 결론은 명확합니다. 계약서에 전속근무 조건과 중도 퇴직 시의 처리를 적어 두지 않았다면 나중에 돌려받을 근거가 약합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괜찮나요

근로기준법 시행령 별표 1은 상시 4명 이하 사업장에 적용할 규정을 열거하는데, 근로계약 항목에 제20조가 포함돼 있습니다. 해고의 정당성을 정한 제23조 제1항이 빠져 있는 것과 대비되죠. 규모와 무관하게 위약 예정 금지는 그대로 적용되니, 소규모라 괜찮을 거라는 판단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정작 서명을 받아 둬도 위약금이나 손해배상액을 미리 정한 부분은 효력이 없습니다.

회사가 대납한 실비를 항목과 금액으로 특정해 두면 반환약정이 서지만, 원래 지급 의무가 있던 급여는 그 대상이 아니고요. 손해가 났다면 액수를 입증해 청구하는 경로가 따로 남아 있고, 사이닝보너스는 계약서 문언이 결론을 좌우합니다. 지금 쓰고 있는 각서와 계약서에 이 문구들이 있는지 보시면 됩니다.

  • 중도 퇴사 시 위약금 ○○만원
  • 손해 발생 시 ○○만원 배상 같은 정액 배상
  • 일정 기간 안에 퇴사하면 지급한 급여를 반환
  • 퇴직금·연차수당을 포기한다는 문구
  • 교육비 반환 약정에 연수 중 정상급여·상여금이 반환 대상에 포함돼 있는지
  • 사이닝보너스 계약서에 전속근무 조건과 중도 퇴직 시 처리가 적혀 있는지 (없으면 돌려받을 근거가 약합니다)

참고 판례

참고 법령

95다52222 판결은 구 근로기준법 제24조를 적용했으며, 현행법에서 같은 내용은 제20조입니다.
법령은 개정될 수 있으므로 실제 적용 시 최신 내용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